그것은 무척이나 기묘했으며 갑작스럽게 눈 앞에 당도해 왔다.
"흐음, 역시 실험의 마지막은 확인인데." "마땅한 실험체도 없어서 조금 꺼려지는데. 에게 이상이라도 생기면 어떡할 거지?" 오랜만에 자엘아폴로를 찾아 실험실 쪽으로 움직이다 무심코 들려온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다. 두꺼운 벽 너머로 조금 웅웅 작게 울리는 익숙한 그 목소리에 내 이름이 담겨 흘러나왔기에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이 어려웠다. 호기심이 생겨 슬그머니 청각을 곤두세우자 조용한 복도 너머로 두런두런 목소리들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네 녀석의 그 기술, 믿을만 한 건가?" "물론! 고작 아란칼 주제에 이 몸의 실력을 무시하지 말라고. 애시당초 그 결과가 지금도 내 옆에 버젓이 있으니 말야." "하. 에게 혹여라도 문제가 생기면 네놈의 장기 부터 하나씩 해부해 주겠어, 사신." 톡, 매섭게 누군가를 향해 쏘아붙이는 자엘아폴로의 말을 끝으로 목소리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혼자가 아닌 듯, 주고 받아지는 목소리 하나는 자엘아폴로의 것, 다른 하나는 자신도 익히 아는 또 다른 목소리였지만 동시에 여기 있어서는 곤란한 자의 것이기도 했기에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자엘?) ".... 언제부터?" "오, 마침 잘왔군! , 이리 좀 와봐라." 천천히 그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조심스레 열자 놀란 듯 이쪽을 보는 자엘의 시선과 딱 맞추었다는 듯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한 쿠로츠치 씨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저한 앙숙 관계라고 할 법한 저 과학자 둘이 대관절 무슨 바람이 불어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고 실험을 하고 있던 걸까, 생각하며 그 둘에게 다가서자 쿠로츠치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것 좀 보거라. 어떠냐? 마음에 드나?" (...?) 유독 기분이 하이텐션인 그의 얼굴을 보다 천천히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순간 터져나오는 비명을 가까스로 두 손을 들어 막으며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그곳에 고정시켰다.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자엘이나 아직도 드물게 만족한 표정으로 제 가면을 쓸고 있는 쿠로츠치 씨의 모습은 그때 보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 정도로 눈 앞의 광경은 충격을 가져왔다. (그림...죠?) "아니. 전혀. 설마. 절대." "그런 망나니와 내 회심작을 비교 말게!"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그 이름에 둘이 왠지 똑같은 표정으로 펄쩍 뛰며 기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심으로 싫다는 그 얼굴을 마주 보며 실언 했음을 인정하고 다시 눈 앞을 바라보았다. "역시 의해도 바꿔버릴걸 그랬나." "저게 최대한 바꾼거라고. 그 이상 무리하면 의해 자체가 무너져. 벌써 몇 번이나 실험했잖아? 그새 까먹었나, 아란칼?" 소근소근, 부러 내 귓가로는 들리지 못하게 끔 말하는 둘에게서 신경을 돌리며 대신 기다란 직사각형 탁자 위에 죽은 듯 누워있는 '그것' 에게 다가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그만 아이였다.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는, 기껏 해봤자 열 살 전후로 보이는 매우 조그만 그런 아이. 호로의 특징인 구멍이나 뼛조각의 흔적조차도 발견할 수 없는, 그야말로 온전히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그 조그만 아이의 외양은 이쪽이 잘 아는 누군가와 닮아 있었다. 새파란 그 머리색와 눈가에 그려지듯 새겨진 문신 라인.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날카롭게 빚어진 듯한 이목구비는 분명 그를 닮아 있었다. 그렇지만. (.......달라?) 무어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었지만 분명 그와 달랐다. 그것은 가령 눈 위까지 내려진 차분한 머리 스타일이라던가 가면, 구멍의 유무 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분명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틀린 것 같은 그 기묘한 느낌을 한참이나 느끼고 있자하니 문득, 움찔 하고 눈 앞의 아이의 몸이 흔들렸다. (!?) "뭐..." "이런, 벌써 깨어나려는 건가?" 그와 동시에 당황한 듯한 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미처 둘의 제지가 떨어지기도 전에 그 어린 소년이 여직 감고 있던 두 눈을 확 떴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비로소 '다르다' 라는 것의 위화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 그림죠와 언뜻 비슷한 외양의 그 아이의 눈동자는 나와 같은 색이었다. 새파란 머리색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눈의 색은 거울을 보고 있는 것 마냥 친숙하면서 동시에 기묘한 위화감을 주었다. 그의 모습으로, 나와 닮은 시선을 주는 아이는 이윽고 내게 시선을 맞추었다. "엄마?" (?!) 이윽고 그의 입술 사이로 내뱉어진 말에 몸이 절로 경직됬다. 누가? 누구의? 왜? 그런 당연한 물음을 무시라도 하듯, 아이는 곧장 몸을 일으켜 내게 안기듯 덤벼들었다. 분명 제 허리께도 오지 않는 작은 키였건만, 거기서 부터 나오는 파워는 상당해서 그대로 밀려 뒤로 쓰러져 버렸다. 엉덩방아를 찧었음에도 채 돌아오지 않는 내 정신을 붙잡아 준 것은 참으로 완벽하다 싶을 정도의 타이밍을 재어 이쪽으로 와준 그림죠 였다. "뭔데 이렇게 시끄러워... 넌 거기서 뭐하냐, ." (.......) ".......그리고 네게 매달려 있는 그건 또 뭐고?" (......) 어느것 하나 제대로 답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반쯤 날아간 나를 붙잡으며 여직 즐거워 하던 아이의 시선이 흘끗, 그림죠에게로 향했다. 그리고는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그에게는 닿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싸늘하게 가라앉은 문장을 툭 내뱉었다. "...쳇. 훼방꾼." (...?!) "넌 뭐야. 에게 당장 떨어지지 않으면 밟아버린다." 그 험한 적의에 놀라 있는 사이 그림죠는 이젠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 인상을 팍 눌러 쓰며 정말 밟아버리기라도 하듯 오른쪽 다리를 들어올리는 것을 보며 황급히 만류하려던 그떄, 여태까지 사태를 관망하던 두 과학자가 움직였다. "이런. 그만둬, 그림죠. 그 녀석에게 위해라도 가한다면 가만 안둘테니까. 그건 널 위한 게 아니야." "저런 개채를 더 만들기도 이젠 힘들단 말이다. 자네가 그것을 밟아 버려 내 오랜 노고와 수고를 한번에 무시해 버린다면 자네는 향후 수 개월 동안은 내 실험체가 되어 지하에서 피투성이로 굴러다니고 있을 걸세." 둘의 농담 같지 않은 협박에도 불구하고 그림죠는 어디서 개가 짖냐는 듯 코웃음만 내비치며 들어올린 다리를 아이에게 그대로 휘둘러 버렸다. 말리고 어쩌고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몸 위에서 느껴지던 적당한 무게가 사라졌고 대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그림죠...!) "아앙? 뭐가 문제야 너는. 애써 도와줬더...!" 울컥 해서 일어나 무어라 외치려는 내게 먼저 선수쳐 말하던 그림죠의 안색이 순간 싹 굳었다. 그것에 의아함을 느낄 틈도 없이 상당히 짜증스러운, 그러면서도 어딘가 지독하리만큼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분명 온 힘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힘을 실어 날렸을 그의 발에 맞고서도 지독히 멀쩡하게 걸어오는 아이의 시선이 노기를 담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저딴 게 설마 내 아빠라고는 안하겠지." "......아빠?" 못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순간 기묘하게 찌그러지는 그림죠의 얼굴을 보며 나 역시 해명이 필요하다는 듯 뒤로 몸을 돌렸다. 그만큼이나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나로서는 당연한 행동이란 것을 알고 있던 것일까, 자엘이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내뱉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아이는 너희 둘의 아이야." "무슨 개소리야?" "말 끝까지 들어, 그림죠. .......솔직히 처음에는 반쯤 흥미로 시작한 일이긴 했지만. 애초에 너와 은 인간과 호로. 그 관계에 불과하다는 건 알지? 어떻게 하든 그녀가 너와 있는 한 아이를 가질 수는 없다는 소리야. 네 녀석이야 니 애새끼가 있든 말든 신경은 안쓰겠지만 그녀는 다르겠지. 현세의 인간들은 대부분 아이를 원한다고 하니까. 그래서 준비했어. 저 사신과 같이 의논하면서 말야." 거기까지 말한 자엘은 잠시 숨을 골랐다. 버릇처럼 안경을 쓸어올리는 그의 행동으로 보아 아마 머릿속이 제법 복잡한 것 같았다. 그의 말을 잠시 기다리는 동안 그림죠는 아직도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어 제 '아이' 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아이? 그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가능한 가 싶어 다시 질문을 하려는 순간 자엘이 마저 입을 열었다. "의해와 의혼. 사신의 세계에는 그런 게 있다면서? 현세에서 필요한 가짜몸 의해. 그리고 가짜 개조 혼백과도 비슷한 의혼. 이 두가지를 이용해 저 사신은 제 '딸' 을 만들었다 했어. 그리고 나는 그것을 우리의 방식대로 응용해서... 만든거야. 서로의 영압, 혹은 그 흔적을 조금씩 채집해서 의혼을 만들고, 너희 신체 일부를 이용해서 그 의혼을 담을 의해를 만들었어. 결과는 성공적이었지. 둘의 외모부터 시작해서 적당히 잘 닮아 있는 저 아이를 탄생시키는데 성공한거고. 그러니 방식이 다를뿐, 저 아이는 엄연히 너희의 영압과 신체가 섞이며 만들어진 아이야." 그 단호한, 그리고 갑작스러운 말에 그림죠와 나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새로운 충격에 휩싸여 혼란스럽게 흔들리는 시선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그런 우리 둘의 모습을 아이는 알 수 없는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