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게 소리없이 열리는 그 문의 이음새는 꽤나 유했다. 조금의 삐걱임이나 쩌걱거리는 낡은 나무의 마찰음조차 없이 매우 조용히 열리는 방은 곧 내 손에 의해 다시 작은 철컥임을 내며 닫혔다. 제 아무리 청력이 좋은 그라 해도 어느정도 있는 거리에서 이 정도의 소리는 제대로 듣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돌리려던 그때, 미약한 숨소리가 들렸다.
"...음." 작은 잠꼬대와도 같은 소리였지만 그것은 예민해져 있던 귀로 곧장 전달되었다. 주변을 그제야 살펴보자 다소 낯익으면서도 무언가 조금씩 위화감을 주는 공간에 나는 이곳이 그의 방이 아닌, 다른이의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방도 간단한 물품 외에는 깨끗하다 못해 삭막할 정도로 꾸며져 있지 않았지만 이쪽은 이쪽대로 심했다. 하얀 공간에 있는 것은 제법 널직한 침대나 소파 비슷한 물건들 뿐. 그 어느것도 존재하지 않는 이 황량한 방을 가로질러 소리가 난 쪽으로 걸어가보았다. (...사람?) 두 사람은 누워도 될 법한 넓은 침대를 독차지 하고 있는 것은 한 남자였다. 검은색에 가까운 고동빛 머리카락이 곱슬거리며 자연스럽게 늘어져 남자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미처 깎지 못한 듯한 뻣뻣한 턱수염과 전체적으로 조금 나이가 든 듯해 보이는 미중년을 보며 저절로 작은 감탄이 나왔다. 약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그야말로 서양계 배우들 중에서도 톱클래스에 들 수 있을 정도의 외모였다. 전체적으로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이목구비를 한참이나 살피던 도중 문득 보인것은 그의 목에 끼워진 듯한 이빨모양의 뼈장식이었다. 그것은 그림죠의 오른쪽 얼굴에 붙어 있는 뼈조각과 비슷해 보였기에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것을 만져 보려는 순간, 턱 하고 손이 붙잡혔다. "누구...?" (!) 아직은 졸음이 가시지 않은 어조로 느릿하게 말하는 남자의 눈이 조금씩 떠져갔다. 이윽고 천천히 눈꺼풀을 들고 나오는 새파란 그 눈동자는 그림죠와 비슷하면서도 좀 더 짙은 색이었다. 나른해 보이는 눈매와 달리 이미 내 손을 붙잡은 그의 손에는 경계로 인해 힘이 가득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며 황급히 그를 두드렸다. (아, 죄송해요.) "........" (멋대로 들어와서... 그렇지만 아직 나가면 곤란해서.) "...그림죠, 그 녀석이 데려온 인간 여자잖아." 변명과도 같은 내 말을 대번에 자르며 제 할말을 하던 남자가 이내 온전히 상체를 일으켜 이쪽을 바라보았다. 탐색하는 듯한 시선에 훑어내리듯 보여지자 왠지 조금 거북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을 눈치라도 챈 모양인지 곧 그의 벽안이 슬쩍 거두워졌다. "안녕." (아, 안녕하세요.) "그림죠에게 도망 온 거야?" 길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쭉 펴는 그의 입에서는 여전히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실히 졸린 듯 다시금 감겨지려는 그의 눈은 이쪽을 보며 간신히 뜨는 것을 유지 하는 모양이었다. 낮게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아저씨 특유의 울림이면서도 묘하게 조용조용 했다. 듣기 편한 그 음성을 들으며 고개만 젓자 그는 그래? 라고 되물으며 무성의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 녀석, 꽤나 열심이네. 자기가 인간을 위해 직접 뛰어다닐 정도면......." 쓱, 시선이 다시 이쪽으로 향해졌다. "...확실히, 영압 자체는 맛있는 냄새가 나니까. 왠지 안정도 되는 것 같고........" 킁킁, 하고 가볍게 코로 내 냄새를 맡던 그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 나사 하나 풀린 듯 해보이는 그 맹한 모습에 슬쩍 이만 나가려고 뒤로 물러나자 그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데려다 줄게. 그전에..." (?!) 짧게 말하며 나를 들쳐업은 그는 이내 그 상태로 방문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침대 위로 엎어져 버렸다. 그것도 나를 껴안은 상태 그대로.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 상황에 놀라 버둥거리자 여전히 곰인형 껴안듯 둘둘 말아버린 그의 목소리가 귓가로 느긋하고도 고저없게 들려왔다. "널 껴안고 자면 잠이 잘 올것 같으니까... 잠시......." (자, 잠깐...) "...ZZZ..." 채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금새 잠에 빠져들어 옅게 코까지 골고 있는 이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대항한다던가 하다 못해 빠져나가는 방법은 어려워 보였다. 느긋한 한량같은 외모와 달리 나를 붙잡고 있는 두 손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으니까. 결국 그의 품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30분 정도를 보내다가 기어코 일이 터졌다. 갑작스레 그의 방문이 쾅, 거칠게 열리면서 한층 사나워진 그림죠의 고함이 귀를 찔러왔다. "스타크! 죽고 싶냐!?" "...뭐야." 그 가공할 만한 거친 음성에 곤히 자고 있던 남자가 깨어나며 한마디 내뱉었다. 남자 역시 방해받은 잠에 대해 상당히 짜증이 나보였지만 그림죠 역시 마찬가지인 듯 했다. "이게 지금 누굴 데려가서 안고 있는 거야? 죽고 싶냐!" "...아, 시끄러워. 졸리니까 언성 높이지 마." "쓸데없는 말 집어치우고, 당장 그 녀석 놔!" "......." 사납게 이까지 드러내며 외치는 그림죠의 모습에서 더이상 자극하면 죽도 밥도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을까, 남자는 정말 귀찮은 얼굴로 간신히 나를 놔주었다. 얽매던 그의 팔이 풀리자 마자 나는 벌떡 일어나 그에게로 달려갔고 그림죠는 그런 나를 잡아 제 뒤로 보내며 한껏 성을 냈다. "다음부터 이 녀석 건드리면......." "변함없이 시끄럽네. 조용히 해. ...저거 니가 데려온 여자 맞지? ...어디서 났어? 나도 줘." "이 녀석이 무슨 물건이냐? 잠 덜깬 거면 마저 주무시지." "...음. 그치만 그 여자, 안고 있으면 잠이 잘 와. 왠지 편안해지는데다 영압 자체가 제법 맛있는 향을 내고 있어서 여러가지로 좋은걸." 덤덤히 말하는 그의 눈은 여전히 졸린 듯 나른했지만 목소리는 또렷했다. 그것을 알아차린 그림죠의 얼굴은 흉상 저리가라 할 정도로 찌그러지는 중이었지만. "...넘보면 죽여버린다." "......흠." 여전히 위아래라는 게 없구나 넌. 그렇게 짧게 비판조와도 같은 음성을 흘리던 그는 슬쩍 고개를 흔들며 싸울 의사는 없다는 듯 다시 침대로 꾸물꾸물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익숙하다는 듯 혀를 차며 등을 돌리는 그림죠의 뒤로 여전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에 또 와, 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