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무슨 개소리냐. 인간 여자를 감시하라니?" 하. 짧게 탄식과도 비슷한 한숨을 끊어냈다. 다시금 곱씹어 보아도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말에 절로 실소를 머금다가 인상을 한껏 찡그리고 사납게 으르렁 목을 울려 소리를 내질렀다. 녹슨 쇠판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긁어내리는 듯한 불쾌한 울림소리에 아이젠의 명령을 수행하러 왔던 하급 아란칼이 부들부들 떨며 뒤로 물러났다. 아마 제 급한 성질과 흉폭함을 익히 들어온 탓이리라. 공포에 질려 바라보는 그 당연한 시선에 위에 선 자 특유의 더없는 유쾌감을 느끼며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한순간, 눈 앞의 아란칼에게 그대로 무심히 휘둘러졌다. "...!" 푹, 덜익은 고깃덩어리가 꿰뚫리는 저급한 소리. 동시에 몸에 박혀 있다가 쿨쩍, 무언가에 젖은 소리를 내며 빠져나오는 피투성이의 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던 하급 아란칼의 몸이 휘청이며 힘없이 바닥에 추락했다. "......맛 더럽게 없네." 혀에서 느껴지는 그 밍밍한 맛에 짜증을 내며 방금 전 반사적으로 손을 핥아 버린 것을 후회했다. ...차라리 안 먹느니만 못하다고, 이런 놈들은. 입맛만 버렸네, 라고 덧붙여 생각하며 머리를 벅벅 긁다 이내 몸을 돌렸다. 저 발치에서 널부러져 죽은 피를 쏟아내는 하급 아란칼의 존재 자체는 이미 머릿속에서 새까맣게 사라져 버린지 오래였다. 애초에 제 관심을 끌 영압조차 느끼지 못했기에 기억할 의미조차 딱히 찾기 못했다. 지금 자신이 생각해야 할 것은 방금 내려진 아이젠의 전언, 그것 하나였다. 어쨌거나, 명령이니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게 애써 생각하면서도 한차례 정직한 불만을 토해내는 자신의 눈동자가 이미 짙푸른 색으로 번쩍이며 사나울 정도로 짜증을 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적당히 무시하며 가르간타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 여자의 이름이 이였던가." 현세에 도착하자마자 흘끗, 반사적 주변을 경계하며 영압을 탐지했다가 조금 놀라고 말았다. 생각보다 영압이 꽤 높은 혼백이 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자신의 위치와 매우 가까웠다. "? 뭐냐, 저 여자는." 그 목표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제게 돌연 제 지척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고 있는 한 인간 여자가 보였다. 무심코 눈에 띄인 한 그 여자의 옆으로 의아함 반, 호기심 반에 슬그머니 다가간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슬아슬하게 억누르고 있었던 갈증과 허기짐이 갑자기 밑바닥 부터 솟구쳐 오르며 한창 잘 갈무리 되어 깊게 잠들어 있었던 본능을 일깨웠다. "큿...!" 이런적은 처음인지라 조금 놀랐지만 그것을 애써 얄팍한 이성으로 덮어버리며 아직도 솟구치는 내면의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곧장 억지로 닫아버린 입술에 제대로 넣어지지 않은 송곳니가 푹푹 찌르며 피를 내보이고 있었지만 그 덕에 조금은 진정이 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이상 징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맛있는, 냄새." 옅게 미끄러지듯 새어나오는 아주 작은 양의 향이었건만, 한번 맡아진 이상 저절로 입맛이 다셔질 정도로 달콤한, 어딘가 군침 도는 혼백의 향이 아주 가까이서 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정신을 놓아버릴 정도로 강렬한 그 향은 아찔한 감각을 일깨우며 자신의 식욕을 부추기고 있었다. -한순간 이성이라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강렬한 내음을 뿜어내는 혼백. 거기까지 인지한 순간 문득 자신의 머릿속으로 생각 하나가 번개같이 스쳐지나갔다. '저것' 을 먹으면 갈증이 완전히 채워지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살기와 잇새를 비집고 나오는 군침을 간신히 숨기며 다시 여자를 살핀 결과, 조금 곤란한 점을 발견했다. "......아이젠이 말한 이라는 인간 여자로군." 자신이 감시해야 할 대상인 인간 여자의 혼백. 기묘할 정도로 깨끗하고 안정적인, 자신과는 정반대의 속성이면서도 어딘가 편안함과 달콤함을 동시에 일으키는 그 혼백은 꽤 오랜 시간을 버텨 온 자신으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였다. "그래서 아이젠이 관심을 가진 건가?" 무심코 중얼거리면서도 그녀에게 시선을 계속 돌리며 미처 포기하지 못한 식욕을 애써 억눌렀다. 정말 맛있어 보이는데. ..... 먹을까. 이성과 본능의 틈바구니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다 곧 마음을 굳혔다. 자신은 호로. 본능에만 충실하면 된다. 명령이라는 이성 보다는 욕구 라는 본성을 따르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미 자신의 몸은 무서운 기세로 그 여자에게 쏘아지고 있었다. 10m. 5m. 1m. 점점 가까워지며 마침내 손을 뻗으면 그 희고 가녀린 목을 단박에 꺾어 버릴 수 있는 적절한 위치에 선 바로 그 순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