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는 연인. 반려. 애인. 그리고 그런 단어들 뒤에 어김없이 붙는 수식어는 다름 아닌 '첫만남' 이다. 각기 평범하게 일상속에서, 혹은 전혀 색다르거나 특별하게 만나는 운명적인 만남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만남의 장은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깊게 남는 기억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와의 '첫만남' 은 어떻게 보면 무척 단순했었다. (.......?) 또다. 언제나 집을 나올때면 제일 먼저 보이는, 서양계 외모의 남자 한 명. 염색을 한다 해도 나오지 못할것 같은 하늘빛에 가까운 푸른 머리카락과 그에 한쌍을 이루는 눈동자 색. 그리고 눈 밑으로 길게 그여 올라가 도드러져 보이는 특유 사나운 눈초리.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그의 하얀 옷차림이였다. 도저히 이 곳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한 차림새로 폭이 넓은 하얀 바지와 상체가 훤히 드러나도록 까발리고 있는 옷차림을 하고선 언제나 잡아먹을 듯한 눈초리로 이곳을 응시하는 그의 모습은 오늘도 여실히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한결같이 며칠이고 같은 자리를 지키며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그에게 무슨 볼일이냐며 말을 걸고 싶었지만, 언제나 학교 등교 시간에 쫒겨 제대로 말을 붙이기는 커넝 눈도 몇 번 마주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은 모처럼 휴강인 날이었기에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서 쉬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말을 붙일 기회가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 항상 보이는 그에게 무언가를 좀 더 묻고 싶어서 일부러 집 밖까지 나오자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며 담벼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는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잠시 멈칫거리다가 나름 굳게 결심하고 가까이 다가가자 왠지 모르게 그가 움찔, 하고 몸을 떨었다. 그러나 이내 원래 표정을 되찾으며 여전히 이쪽을, 정확히 말하면 내 뒤의 우리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한결같은 표정도 불만이었지만, 바로 앞에 있는데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에게 왠지 모를 심통이 생겨 말을 걸었다. (왜 자꾸 남의 집을 보고 계시는 거에요?) "......." 대답은 없었다. 눈은 여전히 집 쪽을 향한 채. 자세는 요지부동으로 멀뚱히 서있는 그를 바라보다가 혹, 외국인이여서 아쪽 말을 못하나 싶기도 했기에 일단 다시 한 번 불러보기로 했다. (......음, E, Excuse me?) "......." 역시 말이 없었다. 그것이 못내 이상해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아무리 말을 못알아듣는다 해도, 기껏 만국 공통어인 영어까지 뱉었으니 주변에서 자기를 부르고 있다는 건 알텐데? ...이번에는 그를 툭툭 치며 아까보다 조금 화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이봐요! 뭐라 얘기를 좀........) "...! 방금, 나를 부른 건가? 아니 그전에 날 만질 수 있는 거냐?] 그의 어깨를 톡톡 친 순간, 여직 무표정하다 못해 지루해 보이기까지 하던 그의 눈이 확 커지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어 보였다. (...당연하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