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머리 외국인. 그러니까 그림죠라고 당당히 제 이름을 내뱉은 그가 그렇게 소리없이 사라진 지 일주일 정도 흘렀다. 평범한 만남따위는 아니었다 해도 조금씩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익숙한 일상에서 슬며시 잊혀지던 그 기억이 다시금 퍼뜩 떠오른 것은 막 비가 오려는 듯한 그런 우중충한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아직 수업이 있는 학교로 느릿하게 향하는 중이었다. 수업에 늦을까봐 조금 다급하게 막 집을 나오면서 무심코 고개를 돌려 담벼락 쪽을 한번 훑어보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에 저도 모르게 아쉬움을 느꼈다. (...돌아갔나 보네.) 자주 보일거라면서. 조그맣게 입을 삐쭉였다. 말까지 그렇게 하고는 정작 보이지 않는 건 또 무어란 말인가. 살짝 섭섭한 감정을 애써 감추듯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학교로 바삐 걸음을 향했다. 강의실은 한산했다. 시계쪽으로 눈길을 돌렸지만 수업시간에서 10분 정도 늦은 시간이었다. 본디 사람이 없는 강의라지만 의외로 늦은 이들이 몇명 되나보다 라고 생각하며 창가쪽에 앉아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데 창문쪽에서 뭔가 소리가 났다. (.......?) 무심코 고개를 창가쪽으로 돌렸다가 순간 터져 나오는 비명을 삼키며 뒤로 물러섰다. 하얀색- 지금까지 내가 몇 번이나 보고, 또 몇 번이나 이유도 모르는 채 쫒겨야 했던 그 '무언가의 형체' 가 이쪽을 보며 징그럽게 웃고 있었다. 이곳이 3층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분명 엄청난 덩치일 것이라. -평소 같았더라면 이치고가 와주었을텐데...! 그 다급함 속에서 저도 모르게 의지해버리는 한 소년을 떠올리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생각에 머무를 시간을 더는 못 기다려준다는 듯, 그 '괴물' 이 문어 다리 마냥 흐느적거리는 촉수 비슷한 것을 이쪽으로 휘둘렀다. (───!) 너무 놀라면 비명 조차 나오지 않는 말이 사실이었던 것일까. 창문이 연속으로 깨지며 교실의 절반이 깨끗하게 갈라져 부수어지는 것을 현실감 없이 바라보고만 있다가 퍼뜩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공포감과 두려움으로 혼란스러워진 사고를 애써 이성적으로 돌리고자 노력하면서 주변을 살피다 근처에 있던 문을 향해 마구 뛰었다. [어딜 도망가느냐, 인간!] 그러나 그런 내 행동을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 곧장 뒤에서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큰일이다. 이대로는 꼼짝없이 잡히겠다고 생각하며 절로 눈을 질끈 감았다. (......?) ....... 어째 조용하다? 방금 그것은 공격하려고 한 행동이 아니었던가? 방금전까지만 해도 쉭쉭 거리며 시끄럽더니 왜 이렇게 조용할까? 고요해진 순간이 지속될수록 머릿속에서 고개를 드는 궁금증에 무심코 뜨려던 두 눈을 애써 누르며 간신히 참아보고 있긴 했지만, 역시 호기심은 이겨내지 못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눈을 뜨며 천천히 시선을 올리자, 그런 내 눈 앞에 새하얀 옷지락이 보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