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금방이라도 처연히 뚝, 뚝 떨어트릴 것만 같은 그 꽃들은 사방에 자욱히 피어 있었다. 소복하니 쌓이는 하얀 눈 위로 피어난 그 꽃들의 색은 더욱 두드러져, 요사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며 힘껏 꽃봉오리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 꽃을 하나 꺾어, 얼음이 끼어 졸졸졸, 평소와 달리 미약하게 흐르는 시냇물 위로 던지듯 띄웠다. 느릿하게 동동 떠다니던 그 붉은 꽃은 물결에 밀려 밑으로, 밑으로 떨어지듯 시야 너머로 사라졌다.
"........"
꺼끌꺼끌한 목을 애써 다듬어 잠기고 있던 그 이름을 밀어내었다. 대답은 당연히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쩐지 조금 슬퍼지는 기분에 조용히 두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 자신의 시야를 한가득 채우는 것은 붉디 붉은 꽃의 화려함.
"...이것으로 고별이다."
그녀와 같이 수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 곳에, 붉은 저승화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장미보다도 화려하게 보이는 이 꽃이 피어나는 시기는 겨울. 그 누구도 오지 못하는 이곳에서 모든 것이 하얀 눈에 가려져 고요해질 때 이 꽃들은 붉게 눈 위를 수놓으리라. 몇 번이고, 몇십번이고. 지상의 마지막 잎들 마저 모조리 저버리는 그 하얀 겨울날에 화려하게도.
"그것으로 됐을까."
짧게 웃었다. 이곳은 자신만이 아는 그녀의 무덤. 영원히 눈을 감고 자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다시금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하게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다.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올 수 없는 이곳은 이제 더 이상 발자욱을 새기지 못하리라. 자신마저 그녀가 잠든 이 곳에 다시는 올 수 없다는 것이 조금은 안타까웠지만 그것은 조금씩 조금씩 내리는 눈에 묻혀 사라져 간다.
마음의 정리도.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의 곱씹음도 모두 끝났다. 남은 것은 잠이 든 그녀에게 마치는 마지막 인사 뿐.
"...너는 화를 내고, 울면서 매달리겠지만."
아아, 닿아오는 눈의 차가움이 기분 좋은 것은 그녀가 죽은 이후로 처음이었다.
"이 꽃들은 아무도 없는 겨울에, 피어나겠지. ...이제는 나 조차도 못오는 이곳에서, 너만을 위해."
그것은 자신이 그녀에게 주는 마지막 고별의 선물이자- 잠시 후 다시 만나게 될 그녀에 대한 속죄의 의미.
"지금, 간다."
이것으로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입술을 당겨 웃었다. 능숙하게 잡은 칼은 빠르게 몸을 헤집고 들쑤시다 빠져나온다. 더운 김이 칼에 맺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을 보다 그것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매서웠던 추위가 잦아들고, 몸의 떨림 마저 조금씩 조금씩 멈추어 갈 때 쯤 시야가 흐려진다. 몽롱해지는 시야로 하얀 눈위로 여전히 붉은 석산이 보인다. 자신의 몸에서 나와 눈에 뱉어지듯 흘러내리는 붉은 석산은 주변보다 유독 붉었다.
몸이 자각하기도 전에 쓰러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에서야 손가락에 힘이 빠져나간다. 간신히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어 근처에 피어난 꽃을 잡아뜯었다. 새빨간 꽃잎이 어서 오라는 듯 흔들거려, 그것에 가볍게 입을 맞추어 마지막으로 눈길을 돌려 그녀가 잠들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하얀색이 보이지 않는 그 붉음에, 비로소 만족해 웃음이 새어나왔다.
花语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슬픈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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