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덜덜, 경련이 오듯이 떨리는 몸을 가까스로 부여잡았다. 팔에서 시작된 떨림은 빠르게 퍼져나가 온 몸을 지배했다. 지금 기분이 어떤지 누군가 묻는다면 결코 좋은 소리를 섞지는 못할 것이다. 쉬이 멈출 기색이 없는 자신의 몸상태에 미간을 찌푸리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뽑혀 있는 자신의 검을 들어 손바닥을 베었다. 따끔거리는 고통 직후, 가로로 갈라져 붉게 피를 쏟아내는 제 손에서 지나친 비린내가 나는 것에 천천히 이성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눈앞이 시뻘겋게 변한다는 문장을 비로소 실감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바뀌며 모든 것이 백지로 변한다는 말 또한. 가슴 언저리를 무언가로 콱 눌러놓은 듯한 더러운 기분에 당장이라도 검을 뽑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하나 하나 베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누구냐는 제 질문에 당황한 표정으로 어떤 말도 하지 않던 그녀를 보는 순간, 살심은 배가 되어 주변을 짓눌렀다. 한순간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마저 잊고 자신의 영압을 그대로 방출할 뻔 했다. 억눌린 영압이 막 터지기 직전, 작게 기침하며 몸을 떠는 그녀를 보고 아차 싶었다. 혀를 차며 자신의 어리석음에 비웃음을 던지고는, 그대로 천천히 영압을 갈무리 했다. ......익숙하지 않아, 가끔 잊어버린다. 본디 인간이란 것 자체가 얼마나 무른지, 얼마나 약한지조차. 내갈리는 이를 가까스로 멈추며, 정말 최대한 다정하게. 자신이 낼 수 있는 목소리 중 가장 상냥한 목소리를 흉내내며 마지막 이성줄을 잡고 다시 한번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대체 누구야? 감히 네게 손을 댄 간덩이 부은 새끼들이. 망설임과 머뭇임 속에서 가까스로 나온 대상에 자신은 입술을 비죽 올리며 웃었다. "이런... 이번에는 좀 지나친 거 아니야? 주변 아쥬커스들 씨가 말랐다고, 그림죠." "......."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적당히 정리하고 들어와. 아까부터 이 찾고 있는데 그런 몰골이나 보여주려고?" 다소 색이 어두운 금발에, 중성적인 얼굴이 그렇게 말을 거는 것에 두 눈을 깜박였다. ...일폴트로군. 내질러진 영압으로 그렇게 구분하며, 묻은 피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시야를 손으로 걷어냈다. 불쾌한 비린내와 검붉은 주변이 한층 개이며 비로소 원래대로 보이기 시작하는 광경에 몇번 더 눈을 깜박여 잔여물을 털어냈다. "가자." 바닥은 온통 붉었다. 하얀 모래들 위로 덧씌워진 붉은색에 사방은 어딜 봐도 다홍빛이었다. 그 위로 널려진 뼈, 살점. 분명 호로였을 무언가의 고깃덩어리들이 걸을때마다 짓밟히는 것에 일폴트가 미간을 찌푸린다. "대체 얼마나 죽이고 다닌 거야? 아까부터 소니드로 달려온건데, 끝도 안 보이는군." 정말 한폭의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아쥬커스란 아쥬커스들은 전부 죽여나간 것인지, 이 근처 웨코문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저 시체들은 전부 아쥬커스들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학살에 놀라 작은 호로들이 몸을 사리고, 근방의 바스트로데들이 눈치를 보는 것이 훤히 느껴졌다. ......이 모든 일이 고작 인간 여자 하나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면, 저것들은 대체 무슨 표정을 지을 것인지. 혀를 차면서도 아주 이해하지 못할 심정은 아니었기에 먼저 성큼성큼 돌아가는 그림죠의 뒤를 조용히 따르며 일폴트는 냉정하게 가라앉은 눈을 돌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