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기계가 공간을 잔뜩 메우고, 어지러이 나열된 실험기구들과 사방 팔방에 놓여진 실험용 용기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자엘아폴로는 한눈에 봐도 무척 바빠 보였다.

다른 이들이 본다면 분명 이번에는 또 무슨 실험을 하고 있길래 저렇게 정신없나─ 혀를 찰만한 모습이었지만, 정작 그의 머릿속은 실험이 아닌 다른 생각으로 더욱 더 핑핑 돌아가는 중이었다.





"......설마 했지만."





실험 결과를 분주히 분석하던 자엘아폴로의 손이 문득 멈췄다.
그 이례적인 일에 자엘아폴로 주변에 있던 프라시온들이 의아한 기색으로 그를 응시했다.

자신들의 주인은 다른 때라면 몰라도 실험 중에는 절대 그 손을 멈추지 않았다.
원하는 결과가 나온 직후에도 그의 손은 다른 실험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여태까지 보아왔기에 아주 잘 알고 있었던 프라시온들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한가득 떠올라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자엘아폴로는 이제 실험 보고서까지 잠시 옆으로 밀어내며 본격적으로 생각에 잠겼다.

아까부터 줄곧 어떤 생각에 잠겨 있던지라 실험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이렇게 계속 상념에 빠져있느니 차라리 머릿속을 한번 정리한 후 움직이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에 그는 의자에 앉아 불과 이틀 전의 일을 떠올렸다.







* * *







"자엘아폴로."





그날도 한창 실험으로 바쁘던 자엘아폴로의 연구실에 불쑥,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보초를 세웠던 프라시온들이 사방에서 동요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엘아폴로는 미간만 한번 모았을 뿐, 갑작스런 불청객의 난입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색을 비추지 않았다.

저런식으로 불쑥 찾아드는 것은 웨코문드에서 단 한 존재다.
그리고 그 존재 한에서 자엘아폴로는 연구실을 기꺼이 개방해주었던지라 지금 막 방문한 이 불청객이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다만 예상을 빗나간 점이 두 가지 있다면, 하나는 방문객이 한 명이 아니라는 것과────





"......?
상태가 왜 이래?"





자신이 유일하게 제 연구실의 방문을 허락했던 그녀가 정신을 잃고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었다는 것이었다.





"독에 당한건가? 대체 어디서......"

"......."





과학자라고 하지만, 의학이라는 것에 있어서도 자엘아폴로의 지식은 탁월한 수준이었다.
적어도 인간들의 기준에서는 제법 수준급의 의사라 불려도 과하지 않은.
태연하게 생체실험도 어지간히 해온 그인지라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는 보자마자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림죠. 을 여기 눕혀."





이제는 입술마저 검푸른 빛으로 물들어 가는 그녀의 모습에 절로 조급함이 일었다.
다급히 처치를 위한 기구들을 쓸어와 본격적으로 그녀를 살피폈다.

...생각보다 강한 독의 배합에 미간을 조금 찡그리긴 했지만, 그는 곧 침착하게 해독약을 조제하기 시작했다.
약품이라면 정말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는 자엘아폴로의 연구실에서 해독약을 만드는 것 쯤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반 각도 걸리지 않아 만들어진 해독약을 그녀의 입에 넣어주면서 자엘아폴로는 비로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이게 대체 무슨일인지 설명을 부탁하고 싶은데.
설마 불쑥 찾아와서 무단으로 침입한 주제에 이렇게 부리고는 그냥 넘길 셈은 아니겠지, 그림죠."

"......"

"───이봐?"





여태 미동없이 서있는 그림죠의 모습에 무어라 윽박지르려던 자엘아폴로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림죠는 평소처럼 사납게 고함을 지르지도, 흉폭한 그 영압을 사방에 뻗대지도,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두문자를 구사하지도 않았다.

단지.





"────상태는."





지독히 메마른 표정으로 그녀의 상태 여부를 물었을 뿐이다.
서늘한 무표정은 평소 그의 분위기와 너무도 상반되어 있었다.
침착하다 싶을 정도로 가라앉은 그 고요함이 오히려 오싹함을 불러오는 것에 자엘아폴로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폭풍이 오기 전의 고요함.
해일이 몰아닥치기 전의 잔잔함.

그의 상태는 딱 그것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채워진 본능이 다급하게 경종을 울렸다.
지금 저것은 이성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고.
잘못하다가는 목덜미를 물어뜯기고, 육시가 되어 이 바닥에 처참히 뿌려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아도 결과는 비슷하게 참혹함을 담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자엘아폴로는 감지했다.
바르르, 떨리는 손을 간신히 안경테에 걸치며 비교적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문제없어. 바로 해독약을 투약하기도 했고, 심장까지 뻗어지기 전에 독소가 잡혔으니까.
지금은 해독의 반발작용 때문에 몸이 버티지 못하고 정신을 놓은 것 뿐이야.
아마 삼일 내로는 깨어날거고."

"......."





섬짓한 기세가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에 자엘아폴로는 내심 안도했다.
그가 흘리는 강대한 영압의 기운에 운없게 휘말린 프라시온들이 짓눌리다 못해 터져나가는 광경이 보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림죠의 그 묵직한 영압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데려간다."

"...마음대로."





툭 내뱉는 그의 말에 자엘아폴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치료도 처치도 끝났다.
여기서 계속 있다 한들, 그녀에게 해줄 것은 더 이상 없었다.

자엘아폴로의 말에 그림죠는 천천히 손을 뻗어 죽은듯 자고 있는 그녀의 몸을 안아올렸다.
품 속에 조심조심, 서투른 손짓으로 끌어안던 그림죠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





그리고 그때서야 자엘아폴로는 처음으로 그림죠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침착한 게 아니었다.
무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저 표정으로 여태까지 줄곧──────.





"설마했지만 정말......."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며 자엘아폴로는 신음과도 같은 탄성을 내질렀다.
이건. 설마. 정말로. 그렇지만.





"천하의 그림죠 재거잭이 겁을 먹었다, 고?"





목이 졸린 듯한 힘겨운 중얼거림은 이미 떠난 당사자들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 마음껏 소리내어 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갑작스레 밀려온 충격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 보았다 라는 가설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인간의 기준으로 신체능력이 떨어져 있다면 모를까, 몇십 미터의 거리라도 코 앞마냥 꿰뚫어 볼 수 있는 에스파다들의 특정상,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한심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저건 그림죠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림죠 재거잭이란 소리다.

저 오만함과 방자함. 불손함. 자존심과 자만심, 자신감으로만 이루어진 생명체가 저것이다.
짐승의 모습을 막 탈피한 듯한 흉폭함과 내재되 있는 호전적인 본성은 웨코문드에서도 단연 1위를 다툰다.
심지어 그 아이젠에게도 적대적인 본성을 스스럼없이 내세우며 이를 드러낸, 그야말로 본능에 가장 가까운 에스파다다.

...그런 그가 두려운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아이젠에게도, 다른 사신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그 감정은 분명 자신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니, 처음이고 뭐고 절대 그럴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멍청하다 싶을 정도로 겁이 없는 에스파다.

그것이 자엘아폴로가 그림죠에게 가진 명제였으며, 나아가 겁이 없다── 라는 그 문장을 부정하는 이들은 웨코문드에서는 없었다.
만용과 오만에 가까운 그의 성격은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었으니까.

잔뜩 흔들리던 동공.
미미하게 느렸던 호흡.
창백했던 얼굴.
미미하게 떨리고 있던 그의 몸.
평소보다 유독 가라앉아 있던 목소리.

방금 전 그의 징후를 떠올리며 자엘아폴로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게 겁을 먹은 것이 아니라면,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슨 감정이란 말인가.

......천하의 그림죠 재거잭이 저토록이나 동요한다고?

제 프라시온들을 터트리며, 저를 옭아매었던 그의 묵직한 기세는 공포에서부터 시작되어 풀려나온 것 이었다.

호로들이 통상 갖는 '퇴화' 의 공포.
그런 공포 따위 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무언가를 두려워 했던 그림죠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엘아폴로는 섬찟한 기운에 감싸인 몸을 억지로 털어내었다.





* * *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자엘아폴로는 천천히 결과의 끝을 갈무리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궁리해도. 그림죠가 그런 공포를 느낀 이유는 점차 확실하게 한쪽으로 굳어져 갔다.
수만가지, 수천가지의 원인을 도출해도 결국 하나로 좁혀지는 그 동기는 하나였다.





"이 죽는다는 것 자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두렵다─── 는 건가."





호로들은 부정적인 기운이 뭉쳐진 악령과도 같다.
원념. 사념. 집착. 옭매임. 미련.
그런것들이 엉클어져 탄생한 마이너스 적 존재이기에 사신들이나 인간들과 달리 부정적인 기운에 영향을 더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처음으로 공포를 느낀 제 주인의 상태에 그림죠의 영압들은 그대로 영향을 받아 같이 동요한 것이다.
자신이 그림죠의 영압에 짓눌렸던 이유는 그것이었다.
호로들은 본능적으로 공포라는 것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니까.

거기에 같이 느껴졌던 것은 밑도 끝도 없는 절망감.
부정하며 다시 떠올려 보아도 그 두 가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었다는 것에는 반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뻔하고도 익숙한 감정은 호로들이 가장 근본적으로 지닌 감정이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그녀의, 그리고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그녀를──────."




차마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자엘아폴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림죠 재거잭이 에게 품고 있는 그 감정은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 따위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차갑고 어두운 감정이었다.
또한 지나치게 음습하고 진득하며,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 만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감정의 가장 밑바닥에 잠겨 변질되고 일그러진 그것은 분명 초반에는 그 사랑이란 것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릇 안에 그림죠 재거잭의 감정을 다 담기에는 그릇이 너무나도 작았다.

그렇기에 억누르고 짓눌러, 꽉꽉 농축시켜 가까스로 담아냈기에 그 진득하며 압축된 감정은 간신히 그림죠의 안에 담겨질 수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불어나고 있는 눅진한 그의 감정들은 언젠가 그 그릇을 깨고 흘러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안에 집어 삼키겠지.

그렇기에, 그의 그 감정을 온전히 받고 있는 그녀에게 절로 이는 안타까움을, 연민과 동정심을 감출 수 없었다.
그저 숨이 막힐 정도로 지독하게 억눌려진 그의 감정에 이미 온전히 잠겨 있는 그녀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익사하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이름:그림죠 재거잭
삐걱임이 33 번 울렸다
GOOD:괜찮은데?

Writer : 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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