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곁을 벗어나 따로 방향도 생각해두지도 않고 계속, 한참을 피해 있었다.
그러나 제법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누군가 달리 쫓아오는 느낌은 없었다. 잠깐 의구심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했지만, 수많은 인파들이 오고 다니는 이런 큰 거리에서는 오히려 사람 하나 찾기도 힘들 것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꽉꽉 찬 곳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곧장 눈에 들어오리라. 그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적당히 쉴 곳을 찾기 위해 고개를 든 그 순간, 목 뒤에서 느껴지는 강한 통증에 아찔해지는 정신을 붙잡지 못하고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도망가지 말라고 했잖아. 어째서────" ... 희미해지는 의식의 끝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일어났냐." 눈을 뜨자마자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불과 열 발자국도 안될 법한 거리에서 창가에 기대 이쪽을 보는 푸른 눈은 흉흉했다. 짐승의 안광 같이 새파랗게 일렁이며 어둠 속에서 도드라지는 그의 눈은 서늘한 이질감이 배여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오한과 함께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반짝였다. 사나운 맹수를 눈 앞에 둔 그 오싹한 기분이 몸을 굳혀왔다. 저절로 덜덜, 몸이 떨리는 것을 애써 막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미미한 떨림이 가라앉지 않는다. 말조차 나오지도 않을 정도의 공포와 생존의 위협이 동시에 다가왔다. 평소와 다른── 전에도 그가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던 저 모습이 그의 본래의 성격이라는 것 쯤은 알아차렸다. 온 몸으로 묵직한 중압감을 내비치며, 딱히 숨기는 기색도 없이 줄줄 흘러나오는 살기와 코를 마비시킬 듯한 짙은 피냄새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그의 얼굴은 끔찍하리 만큼 무심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지독하게 담담했다. "도망가면 다리를 잘라서라도─ 라고 말한 것 같은데? 아니면 그런 걸 감수할 정도로 내가 싫었던건가? ...뭐, 상관없어.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시도도 못할테니까. 남아 있는 신체를 걸고 싶다면 또 다르겠지만." 그런 그의 말에 놀라 몸을 내려다보자 척 봐도 튼튼해 보이는 수갑과 쇠사슬이 내 팔과 침대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다리는───── "이제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잘랐는데. 뭐, 곧바로 처치는 했으니 감염이나 휴우증은 없을거다. 처음에는 발목까지만 자르려고 했는데... 무릎으로 기어서 도망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그래도 허벅지 부근 부터는 아까워서 남겨놨지만. ...아? 잘라낸 부분? 미안하지만 보여줄 수는 없어. 다섯시간 전에 남김없이 발라 먹었으니... 지금쯤 소화 됬을 것 같아서. 내 배를 갈라서 확인시켜주기도 뭣하잖아? 그냥 두면 썩을 뿐이니... 게다가 '네 것' 이잖아? 그걸 그냥 두긴 아까워서 말야. 걱정마라. 상상 이상으로 맛있었으니. 솔직히 그 이상 먹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고. 네 일부분이 내 몸 안에 있다라는 사실 하나가 정말 정신을 놓게 해버려서 곤란하긴 한데... 피도, 살도, 지방도, 근육도, 혈관도, 뼈도. 전부를 집어삼켜도─── 부족해서, 모자라서, 좀 더 원하고 원해서. 정말이지......." 차라리 정신을 놓고 싶을 만큼의 대사가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이제는 머리가 아픈건지 몸이 아픈건지 조차 파악하기가 불가능했다. 절로 울컥 올라오는 구토 기미에 지켜보던 그는 태연하게 고개를 기웃인다. 그걸 본 순간 문득 머리를 세게 때리는 충격이 느껴졌다. 지금 눈 앞에 있는 그는, 평소에 알고 있던 그가 아니다. 인간을 잡아먹는─ 최악의 포식자이자 최흉의 괴물. 사신들이 그렇게나 경고하던 호로 본연의 모습, 그 자체라고. 마지막 이성줄을 잡고 있던 그의 손을 쳐내어 놓아버리게 만들었다. 그 탓에 깊숙히 누르고 눌러있던 그의 본능이 터져나와 그를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입맛을 다시며 새파란 맹금류의 눈으로 이쪽을 표표히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분명 인간과 같은 모습이었음에도 끔찍한 괴물처럼 느껴졌다. "죽을때까지 오롯이 내 곁에 있어. 도망갈 시도는 하지마. 다음은 그 팔이니까. 네 두 팔이 찢겨져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싶다면 도망가도 좋아.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더는 바라지 않아. 단 한가지, 원하는 게 있다면... 내게서 더 이상 뒷모습을 보이지 마라. 그런 경험은 한번으로 족해." 천천히 다가와서 끌어안는 그의 몸이 가늘게 떨린다. 밀어내려 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몽롱하게 젖어들어가는 의식이 조금씩 희뿌옇게 변한다. 마지막에 시야로 담겨졌었던 그의 모습은 웃고 있던걸까, 울고 있던걸까. 그것은 이제 확인할 수 없었다. 다시 눈을 뜨면 보게 될 그의 모습은 이미 호로 그 자체가 되어 있을 테니. ────이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단지, 누군지 모를 목소리만이 간신히 귓가에 닿았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