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그거 굉장히 오만한 발언인데.
내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마. 이건 네게 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충고다. 너 때문에 누르고 죽인 감정이 수십, 수백번이야. 널 위해 감추고 숨긴 본심은 그 배는 되겠지. 나 다운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였을 때, 넌 어떤 표정으로 나를 볼까. 질린 얼굴이든- 공포에 물든 얼굴이든. 어쩌면 혐오나 실망에 가까울지도 모르겠군. 진짜 내 모습을 본다면 평소 날 대하듯 행동하는 건 힘들거다. 나답게...라. 정말 '나' 답게 군다면 넌 그렇게 서있을 수 없어. 목이 따이고, 팔다리가 찢겨서 한 끼 식사거리로 넘어갈테니. 그건 내게 있어 지극히 당연한 본능이다. 인간 따위, 식량 정도 밖에 안되니까. 조심하는게 좋아. 난 호로. 근본을 따지면 널 습격하는 그 새하얀 괴물들과 동류다. 아니- 그 이상이면 이상이지, 그 아래는 아니다. 인간의 혼백을 먹고, 갈기갈기 찢어 삼킨다. 살려달라고 외치는 인간의 머리통을 부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남김없이 먹는게 일상이다. 바뀌지 않아, 그건. 절대로 변할 수 없어. 날고기만 먹어대는 짐승의 식성을 풀떼기만 먹게끔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니까. 만일 억지로 그렇게 바꾼다면, 분명 오래 못가 죽어버리거나 완전히 미치겠지. 그런 내가 네 곁에 있어. 얼마나 내가 '나' 를 부정하면서 너와 함께 하고 있는지 넌 모르겠지. 본능을 억누르고 지우면서, 존재의 의의 마저도 없애가면서 너와 지내는거다. 이대로라면 식성이 바뀐 짐승처럼 죽거나 미치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그렇게 결정해서 너와 함께 지내고 있는거다. 이상한가? 어쩌면 아예 이해가 안될지도 모르겠군. 그건 지극히 당연한, 우리에게 있어서 지극히 일부의 모습일 뿐이야. 그런데도 넌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아주 조금만 본성을 드러내도 평정을 잃고 동요할거잖아? ...그러니까, 네게는 내 진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아. 이해하려 들지도, 용납하려 하지도 마. 그냥, 지금처럼 지내는 게 가장 좋아. 너에게도, 나에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