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하지마.
애초에 질렸다면 넌 진즉 산채로 갈기갈기 찢겨져 먹혔을거야. 네가 내게 질린다는 건 애시당초 용납 못하는 일이고. ...그렇지만 말야, 인간은 다르다고 하지. 모든 것에 질리고- 또 다른 것을 찾아 계속 추구해 간다고. 혹은 정(情) 하나 때문에 마지못해 붙어 있는다고 하던가. 그런 방식, 이쪽이 거절이야. 조금씩 식어서 다른 무언가의 형태로 바뀌어 버린다는 건 싫다. 언제나, 몇 번이고 지금 이대로의 절정에서 머무르고 싶으니까. 이 상태를 계속, 계속 유지할 생각이야 난. 혼이 부숴져도, 몸이 죽어도, 이성이 말라가도. 반복하고 반복하는 그 순환의 고리 안에서 몇 번이고 돌고 돌아도. 질릴 틈도 없이 곁에 있을 수 있는 방법 쯤,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그의 얼굴에 뒤틀린 미소가 자리잡는다. 기이하게 번들거리는 눈은 오롯이 이쪽을 향해. 인간의 탈을 간신히 뒤집어 쓰고 있던 짐승이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보이며, 새파랗게 달아오른 안광 속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욕구를 담아. "내가 질린다면, 내게 붓는 그 감정이 마른다면.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무의미 해지고, 나와 같이 있던 순간순간이 지겨워서 어쩔 수 없다면──── 그때는, 같이 죽자." 사랑스러움을 한껏 담아, 무엇보다도 달콤한 그 목소리로 그는 말한다. 애틋하게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의 손이 미묘한 열기를 내보낸다. "네 감정이 온전히 변해버리기 전에, 흔히 말하는 그 '사랑' 이라는 감정이 조금이라도 사라지기 전에. 그 감정이 '정' 따위로 변해버리는 게 아닌 '영원' 으로 끝나기 위해서." 감정이 변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변하기 전에, 그 직전에 차라리 죽자- 그에 대한 감정이 변할 기회 조차 주지 않겠다. 내가 그를 품은 그 마음이 영원히 남아 있도록.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아이처럼 천진하게. 순진무구하게. 당연하다는 듯한 그런 얼굴로 맑게 웃으며.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서늘함을 담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