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거짓말'은 안 하겠지."
서늘하게 식은 주변의 온도는 방금전까지만 해도 달아올랐던 싸움의 고양을 식히고 있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장을 터트린 손에서는 지독한 비린내가 진동한다. 따뜻하게 느껴졌던 붉은 피는 이미 차갑게 굳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 부족했다. 끓어오르는 살심을, 호로의 본능을 참기에는 너무도 미진했다. 당장이라도 이대로 주변을 뒤엎어 버리고 싶었다. 부순다. 부순다. 부순다. 무엇이든지, 어떤것이든지 상관없었다. 갈 곳을 잃은 충동이 연신 아우성을 질러댄다. 을 만나고 가까스로 억제상태에 있던 본능이 외친다. 왜 먹지 않는거야. 그 정도의 혼백이라면 분명 맛있을텐데. 덜덜 몸이 떨린다. 예전처럼 이대로 정신을 놓아버리면 분명 편할것이다. 설령 어떤 것도 남겨지지 않다 해도. ─그리고 그것을, 이제 자신은 허용하지 않는 수준에 와 있었다. 호로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검은 구멍. 마음의 결핍. 그것을 메우기 위한 헛된 몸부림.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허무.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핍을 채우기 위해 '호로의 본능'으로서 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본능'은 그것을 막는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는 건드릴 수 없다. 마지막 남은 최후의 성. 자신의 하나 뿐인 보루. 그것마저 사라진다면, 그 후의 자신의 상태는 장담할 수 없다. 몰랐던 예전이라면. 알지 못했던 과거라면 분명 문제는 없겠지.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이미 의의를, 의미를 알아버렸다. 사라진다면. 부숴진다면. 망가진다면. 분명 자신은─────. ...인간은 너무도 손쉽게 톡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져버린다. 그래서 그녀에게 위험한 이를 뽑고 발톱을 뭉그러트렸다. 뼈를 내주는 한이 있어도 지킨다. 모가지를 물어 뜯겨가면서도 자신을 감싸오는 그녀의 손을 풀지 못한다. 놓아버린 그 순간, 자신은 스스로의 의미를 잃고 소실된다. 메워지지 않는 상실감에. 몰려오는 거대한 공포에. 잠겨드는 서늘한 공허에. 정신적으로 죽어버린다. 그러니──. 소중하고 또 소중해서. 아끼고 아끼며. 숨을 죽여가면서. 귀중하게, 조심스럽게. 자칫 망가질지 모르는 너를 위해. 사라지지 않는 공포에 묻힐 나를 위해. 제일 소중하다. 하나뿐이다. 그러니까 그녀를 제외한 것들 따위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어. "단순히 말을 하지 않았다, 정도니까 말야. 그건 거짓말도 뭣도 아니잖아?" 새빨갛게 물든 공간에서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거짓은 조금도 묻지 않은, 하얀 웃음에 더없이 사랑을 담고. 모든 것은, 너(나)를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