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즈, 라는 이치고의 여동생이 대접해준 점심과 가져간 떡까지 얼결에 같이 먹게 되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느라 제법 둘과 친해졌다. 어차피 이웃이니 사이가 좋아서 나쁠 것도 없기에 간만에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해가 슬슬 떨어질 무렵에서야 그들의 집을 나왔다.
"잘 가." (응. 들어가.) 집 앞까지 나와 배웅을 해주는 이치고에게 답을 해주며 몸을 돌린 그 순간, 지금까지 잠시 잊고 있던 '그것들' 의 존재가 확 튀어나왔다. (!) [인간! 인간이다!] [맛있어 보이는 인간!] 숨을 거칠게 들이마쉬었다. 새하얀 가면으로 얼굴을 다 가린 기괴한 괴물들이 이쪽으로 무섭게 달려오고 있었다. 판타지나 SF 쪽에나 나올 법한 그 괴물들은 오로지 내게만 보이는 '것' 이었다. 어릴 적부터 이때까지 줄곧.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그것들은 이빨을 따닥따닥 부딪치며 손을 뻗고 입을 벌려왔다. 평소 같았더라면 어떻게든 피하고 보았겠지만 하필 이치고의 집 앞, 그 한정되어 있는 공간 덕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저 눈만 질끈 감고 있던 그때, 쇄액,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아악!] [키에에에에에에-!] 높은 비명 소리가 사방을 차지한다. 그것은 내 입이 아닌 나를 공격하던 가면의 괴물들에게서 나는 듯 했기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자 두 동강이 나 천천히 추락하는 괴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들의 모습에 어리둥절 하는 것도 잠시, 곧 눈 앞에 보이는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이치고?) ".......!" 멍하니 벌린 입 사이로 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이 아닌 의문으로 이어진 까닭은 그의 한순간에 달라진 옷차림 때문이었다. 교복차림 대신 새까맣고 긴 옷지락이 빈틈없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바람이 조금 불어옴에 따라 펄럭이는 옷지락 사이로 그가 검을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식칼과도 비슷한 형태의 그것은 그의 키를 조금 넘기는 정도의 길이었다. 칼집 없이 손잡이에 감긴 붕대가 너풀너풀 시야를 가렸다. 흡사 옛날 복장같기도 한 그 아리송한 옷의 형태는 그에게는 너무 익숙했던 것인지 가볍게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아주 찰나라 해도 좋을 정도의 눈맞음 후, 그 특유 다갈색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놀라움을 넘은 경악을 담은 그 시선에 순간 놀라는 사이 성큼성큼 다가온 그에게 제 팔이 붙잡혔다. "너, '지금' 내가 보이는 거야?" (......) 그 기묘한 박력에 눌려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모습에 그는 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주춤거린다. 그의 등 뒤로 동강동강 난 '그것들' 의 시체가 재가 되어 부수어져 밤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호로를 볼 수 있다고?" 조금의 시간을 들여 긴 이야기를 풀어내자 곧장 그의 미간이 찌푸려 졌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생각에 잠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래, 일단 상황 자체는 알겠어." 이치고가 그 말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잠시 침묵 후 주변을 슬쩍 돌아보다가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체에 대해 궁금함을 품고 있는 나를 한번 더 바라보더니 이내 길게 한숨을 자아냈다. "얘기하자면 길지만... 듣고싶다면." 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나는 비로소 '사후 세계' 라는 또 하나의 세계관에 대해 알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