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까만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달 이외에는 어떤 변화도 없는 웨코문드의 특성 덕분에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인지, 시일은 어느 정도나 흐른건지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었다.

솔직히 앞으로 까마득하게 불확실한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불안해 하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라 했던가. 누군가가 처음 발언한 그 지당한 말에 따라 이쪽도 조금씩 이 상황에 대해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느순간부터 경계를 놓아버린 것이 지금의 사건 하나를 만든 것 같았다.




[그림죠, 기습이다!]




한참 달게 자고 있던 어느 날, 불쑥 고함을 지르는 누군가로 인해 순식간에 모두가 소란스러워졌다. 가까스로 잠에 취한 눈을 뜨며 주변을 살필때는 이미 모두가 전투태세로 돌입해 급작스럽게 공격을 가해 온 호로 무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뒤로 빠져.]




이미 가장 앞에서 커다란 호로 하나를 일격에 쓰러트리던 그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짓했다. 그리고는 다른 말 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바로 다른쪽에서 치고 들어오는 호로에게로 몸을 날려 살점을 뜯어먹기 바빴다.




디로이: [난 몸집이 커서 제일 이목 쏠리니까 일폴트한테 가있어.]




옆에서 막 호로 하나를 삼켜버린 디로이가 이쪽에게 건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 앞쪽에 있던 일폴트 쪽으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가 호로 두어마리를 쳐내고 있는 것에 주변을 조심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던 그때, 저 멀리서 그림죠의 고함소리가 귀청을 찢어낼 듯 울렸다.




[멈춰──!]




순간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포효소리에 생각보다 먼저 몸이 굳어버렸고, 그 다음 순간 위에서 퍽, 무언가가 박살나는 소리와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그것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늦어, 머리를 잃은 커다란 호로의 몸뚱이가 이쪽으로 정확하게 쓰러지는 것을 발견했다.

지극히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기도 했지만, 미리 알았어도 이쪽의 몸이야 너무나 가볍게 짓이길 수 있는 저 거대한 호로의 몸에 깔리는 것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멍청한......!]




하얗게 질렸을 안색으로 눈을 감으려던 그때- 이를 악물고 짓씹듯 말하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했던 순간, 몸은 불쑥 들려져 어디론가로 빠르게 던져지고 있었다.




일폴트: [그림죠!]




일폴트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쿵 하고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소리가 뒤따랐다.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저 죽은 호로에게 깔리기 직전, 그가 이쪽을 구해주며 대신 깔렸다는 결론이 나오는 순간 이미 다리는 무작정 그쪽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일폴트: [젠장, 야. 그림죠!]

디로이: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일폴트: [설명은 나중에. 이 몸뚱이부터 치워봐!]




지금은 상황이 정리된 것이 아닌, 아직 전투 중이었기에 다른 이들은 습격을 가해온 호로들을 죽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렇기에 가까운 곳에 있던 디로이와 일폴트가 달려와 커다란 시체의 몸뚱이를 치우고 그림죠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바빴지만.




[시끄러. 호들갑 떨지마.
고작 시체더미에 깔려서 내가 어떻게 될 거 같냐.]




으르렁, 짜증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그가 멀쩡한 모습으로 밑에서 기어나오는 것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새끼 인간 어딨어.]




빠져나와 몸을 두어번 털던 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새파란 눈동자를 들어 사방을 훑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일폴트가 이쪽을 눈짓했고, 이제는 무언가로 인해 잔뜩 일렁이는 눈빛이 된 그림죠가 어슬렁 어슬렁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쩐지 자세까지 조금 낮추며 이빨까지 드러내고 한걸음 한걸음 거리를 좁히던 그가 마침내 코앞까지 다가와 한자 한자 씹어뱉었다.




[너, 아까 내가 뭐랬냐.
뒤로 빠져있으랬지, 언제 앞으로 쳐나가있으래.]




그 말에 뒤에서 디로이가 찔끔한 표정이 되어 미안하다는 눈짓을 해보였지만, 그림죠는 그러거나 말거나 이쪽으로 연신 노기를 발산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말해.
언제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씹어먹어줄테니까.

멋대로 따라오는 것을 내버려뒀더니...
다시 한번 이딴식으로 발목 잡으면 가만안둔다.]




쏟아지는 험악한 말과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내비치는 살의에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정말이지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으로 먼저 몸을 휙 돌려버렸다.



이름:그림죠 재거잭
삐걱임이 33 번 울렸다
GOOD:괜찮은데?

Writer : 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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