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서 있다.

이 모든 분위기와 상황을 정리해서 반사이가 떠올린 단어는 너무나 간단하고 또 명쾌했다.
평소에도 가시지 않던 비린 쇳덩어리의 냄새는 더더욱 짙게 방 안을 채우고, 분명 창까지 활짝 열어두고 있음에도 안의 공기는 너무나 무겁고 짙어, 숨이 막혔다.

발을 한 걸음 더 내딛는다면 당장이라도 서걱이는 날붙이의 소리가, 몸을 옭아오는 끈적한 붉은색이 이쪽을 향해 겨누어질 것이라는 걸 그는 경험상으로도 잘 알고 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모든 감정의 시작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두려움이라는 것에 텁텁해진 입을 쓸었다.
아마 사사건건 방해만 해오는 막부의 개들이 알면 대차게 비웃을 소리겠지.



, 그녀가 한동안 찾아오지 않는 이유에 대한 추측과 짐작은 귀병대 내에서도 무수히 퍼져 있었다.
왜? 라고 질문을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답이 그들의 머릿속에서도 한번씩 돌고 돌았으니.
새삼 이상하지 않다는 반응도 여럿이었으며, 그녀의 문제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상관에게 문제가 더 있을 거라는 여론 또한 상당했다.

그럼에도 귀병대 대원들이 하루에 서너번씩은 한숨을 쉬고, 자진해서 외부로 임무를 나가는 녀석들이 많아진 이유는 단 하나였다.


[죄송합니다.
.......도저히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습니다.]


이쪽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잔뜩 눌린 듯한 어깨를 늘어트리며 말하는 제 부하들을 보며 반사이는 마뜩찮은 걸음을 옮겨 자신의 상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가까워질수록 귀를 진탕시키는 그 음악에 미간을 찌푸리며, 헤드셋으로 듣고 있던 다른 음악의 볼륨을 더욱 크게 올렸다.

그런 자신의 쓸모없는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의 방문을 연 순간.




"......윽."

"──뭐야. 너였나, 반사이."




반사이가 기함을 한 이유는 방 안에 그득한 핏자욱들이 아직 마르지 않은 이유도, 이제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을 이름모를 자객들의 상당한 숫자 때문도, 문을 열자마자 정확히 미간을 노리고 날아든 검 때문도 아니었다.

그 안에서 자신의 상관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원래의 색을 찾을 수 없는 바닥은 붉고, 벽에 소름끼치는 무늬처럼 남은 핏자욱들 밑으로 쌓인 막부의- 혹은 천인들의 시체들을 뒤로 한 채, 나른한 외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그에게서는 여태까지 들었던 소리 중 가장 기괴한, 비틀린 소리가 사정없이 울리고 있었다.

반사이는 이렇게 칠판을 손톱으로 긁어내리는 듯한, 유리 접시를 포크로 사정없이 긁는듯한 불쾌한 이 소리가 과연 음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 그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이는 제 상관은 다시 시선을 거두며 창 밖을 응시했다.

.......분명, 저 창 너머로 보이는 곳은 이 이쪽으로 올 때 반드시 보이는 장소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다른 녀석들이 그랬듯 자신의 입술 사이로도 느지막한 한숨이 흘렀다.




"무슨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연락이라도 해보는 것이 어떠오, 신스케.
아랫것들은 그만 괴롭히는 게 좋을 듯 하지만."

"......."




자신의 말에 눈 앞의 남자에게서 나는 소리가 변한다.
좀 더 정신없는 템포로, 그리고 훨씬 더 거슬리는 날카로운 소음으로.

.......
그는 대체 어떤 것 때문에 이리도 불안해 하는지.

거기까지 생각하던 반사이는 무심코 떠올린 다른 하나의 가설에 쓰게 웃었다.

너무 깊게 생각한 것인지, 가장 원초적인 사실마저 잊어버릴 뻔 했다.

그렇군.
눈 앞의 이 사람은, 분명 연애를 하고 있었지.


그러니 그가 막연한 그 무언가를 저도 모르게 두려워 하는 이유도, 그 근원도 결국 뻔한 이야기였다.
그 이외에 다른 이유가 또 어떤 것이 필요하겠는가.

거기까지 생각하며 반사이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어찌됐건, 남의 연애사정에 고개를 들이미는 것 만큼 꼴볼견인 것은 없었기에.



대화 상대:다카스기 신스케
그에게 닿기까지 앞으로 29 %
GOOD:닿았다!

Writer : 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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