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누른 어깨에서 아직도 붉은 피가 꾸역꾸역 나오는 의 얼굴이 백지장 처럼 새하얗게 변해간다.
처음으로 그는 자신이 표정 변화가 크게 없는 쪽에 가깝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지금 자신이 어떤 얼굴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조금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지혈을 하던 중 그녀의 고개가 힘없이 제 품으로 떨어진다. ...한순간이지만, 숨을 쉬는 것 조차 잊을 정도로 놀란 몸의 상태와는 별개로 머리는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천천히 손을 뻗어 짚어본 맥은 희미했지만, 그런대로 조그맣게 뛰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직, 은 죽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피를 많이 흘린 탓에 쇼크로 기절한 것 같았다. 옅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그녀의 모습에 안심하고 있던 그때서야 그는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다른 남자들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었다. "봐. 역시 저 계집을 찾으면 이 흉악범도 잡을 수 있을 거라 했잖냐." "허... 답지 않게 순정파로구만." "꼼짝 마. 우리는 막부에서 나온 특수 요원들이다. 널 테러리스트의 주범으로 긴급 체포한다." 곧, 이어지는 그들의 말에 신스케는 잠깐 달싹였던 입술을 다시 굳게 다물었다. ...속에서 잔기침을 닮은 웃음소리가 기분 나쁘게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 그래. 이들이 그녀에게 감히 손을 댄 놈들인가. 모든 것에 대한 상황 판단이 마쳐진 그는 성마른 미소를 흘렸다. 정말이지 질리지 않고 탐욕스러운 것들이 아닌가. 대체 내게서 남아 있는 무엇을 또 빼앗아 가려는가, 이 막부는! 소리없이 내부를 진탕시키는 구역질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거, 겁먹지 말고 공격해!" 제일 먼저 시끄럽게 옆에서 떠들던 남자의 입속으로 검을 쑤셔넣었다. 피가 튀기며 게거품을 무는 남자의 머리 로 비죽 나와 있는 검 끝은 물든 붉다. ...그녀가 흘리던 피와 같이. 아니, 다른가? 그는 고개를 기우뚱 하며 깊게 박혀 들어간 검을 빼냈다. 탁한 붉은빛에 약간의 끈적임이 흐르는 것을 보다 미간을 찌푸리곤, 검을 한번 휘둘러 묻어 있는 피를 대충 털어냈다. 더럽다. 무엇이? 글쎄. 답하며 멍하니 검에 맺힌 핏물과 손에 묻은 핏자욱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손에 번져나갔던 그녀의 피와 다르게 검에 묻어 있는 핏물은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다시 없을 혐오감을 드러내며 양 방향에서 뛰어들어오는 두 남자를 향해 검을 사선으로 내리 그었다. 공중에서 터진 피는 그대로 떨어져 흙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반쯤 잘린 몸에서 꾸역꾸역 무언가가 흘러내리기 직전의 모습임에도 두 남자는 아직 살아있었다. 그들은 괴로워하며 바닥을 뒹굴고, 자신의 속에 든 온갖 내용물들이 쏟아지는 광경을 보며 처절한 절규를 내지른다.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있었다. 이 흘린 것보다 몇 배는 되는 피를 토하고, 또 흘리면서 바닥을 기어다니는 모습에 그는 잠깐 불쾌감을 느꼈다. 그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마치 어린아이가 벌레 하나를 짓이겨 놓고, 아직도 반쯤 살아 비비적 거리는 그 벌레에게 보내는 감정과 비슷했다. 더럽군. 자신이 벌인 참상을 가볍게 일축하며 그는 검을 회수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두 남자가 이젠 애원하다시피 외친다. 살려줘, 구해줘 따위의 말과는 한참 반대인 그 말을 연달아 외친다. 차라리 죽여줘. 어서 죽여줘. 너무나 느릿하게 다가오는 죽음과 반비례하게도, 빠르게 찾아오는 온갖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들의 아우성에 애석하게도 원하는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비는 신에게나 부탁하지 그래?" 조금의 주저도 없이 끔찍한 참상의 현장을 떠나는 그의 두 손은 여태까지의 행적과는 너무나 모순되게도, 소중히 누군가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로 바닥을 기며 꿈틀거리는 남자들의 형상이 보였다. 마치 짓이겨진 벌레와도 같은 그 광경은 그가 떠난 뒤로도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