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어딘가 거슬리는 여자가 있었다. 첫만남 조차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그런 여자가.
얼굴이 달선녀, 항아마냥 절세가인인 것도 아니었으며, 성격이 성모 마리아와 비견될 정도로 착한 것도 아니었다. 제법 단아한 얼굴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한눈에 반할 정도의 외모도 아닌데다 성격도 꽤 한 성질 있는 그런 여자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그녀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같이 있으면 편안했고, 뭘해도 귀엽게만 느껴졌던 때는 언제였을까. 다른 녀석들과 그녀가 대화를 나눌때 왠지 모를 불쾌감이 들었던 것은 또 언제였으려나. 유곽에 잠시 들리는 그 한순간 마저도 수많은 기녀들을 밀어내고 머릿속을 휘저어버린 그녀를 자각했을 때는 또 언제였고. 그런 그녀와 함께 했던 마을에서의 시간은 전쟁터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안락했다. 가끔씩 싸우고 돌아왔을때 그 누구보다도 먼저 나와있던 그녀가 맞아줄 때면 왠지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쇼요 선생님과 선생님의 작은 서당에 있는 느낌과 무척 흡사했기에 그녀에게서 절대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패망이 보이는 것을 어렴풋이 예측할 수 있었던 나는 그 즉시 그녀를 떠났다. 쇼요 선생님처럼 지키지 못해 허망히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경험은 한 번으로 족했으니까. 또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너를 지키지 못한다면. 나는 더 이상────. 그래서 떠났다. 말없이. 그녀를 보면 더 미적거릴 것 같았으니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막부에서 직접 쫓는 거창한 수배범이 되어버렸지만 별 불편은 없었다. 막부의 개들에게 잡힐정도로 어중간한 세력은 아니었으니. 다만 함부로 나돌아 다닐 수가 없다는 것이 유감이었다. 그녀를 찾아야 하는데. 찾아서 사과를 하고. 그리고 조금이라도 퇴색되어 가는 기억 속 그녀의 모습을 다시 눈에 담아서 오래 기억할 수 있게.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그저 멀리서, 가까스로 보일 먼 발치에서라도 담고 싶었다. 만나서 예전처럼 거리감 없이 얘기하는것 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단지. 네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네 모든 것이 그리웠다. 잠시 거기까지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터무니 없는 감상이다. 애초에 그녀는 민간인이다.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힌 이쪽과 접촉하면 되려 그녀가 위험해진다. 막부는 가뜩이나 자신을 못찾아 혈안이 되어 있는데. 이제 와서 위험하게 한다면 지난 시간 동안의 의미는 어디로 사라지겠는가. ....... 그래도, 만나고 싶은 마음은 도통 가라앉지 못했다. 솔직히 반년전부터 그녀의 행방을 알아보았지만 매번 허탕이였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그녀와 비슷한 이를 에도의 가부키쵸에서 봤다는 것이다. 만나러 갔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다. 조금 더 빨리 서두를 것을. 잠깐 혀를 차다가 그만두었다. 시간은 이제 충분했다. 그럼 내일을 기약할까. 느긋하게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 옆 골목길에서 낯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불량배에게 시달리는 듯, 묘하게 짜증난 그 당찬 목소리. 꼿꼿이, 또렷하게 정면을 보는 그 눈. 즉시 그녀에게로 향했고 혹여 다칠까봐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뒷모습만을 보여줬음에도 이미 알아차린 듯, 그녀의 반가움과 놀람이 묻어있는 목소리에 당황해 퉁명스러운 대꾸가 튀어나왔다. 기분이 더 최저로 치닫기 전에, 더러운 상황을 빠르게 끝내고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어딘가 놀라움을 넘어선 경악과 분노 서린 눈동자로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비로소 이쪽이 '수배범' 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이젠 이런 내게 질렸나? 하지만 인사를 건네는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는 그녀에게 섭섭함과 왠지 모를 통증을 느끼며 돌아섰다. 더 있다가는 정말 어떻게 될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할 지 모를 것 같았기에. 지난 시간동안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온통 뒤섞이고 나누어져, 종래에는 당장이라도 튀어나와 폭주할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아직 늦지 않았다. 충분히 기다렸어. 이제 더는. 난 더 이상은. .....할 수가. 숨이. .......도. .....면. .....해도. 지금. 당장. 너를. 그리고 그때 당시, 다른 무엇도 아닌 그 첫인사에 화가 났다던 그녀는 나를 붙잡았다. 작게 닿아오는 온기에, 달라짐 없는 가느다란 손가락에 머리는 다시 정상적인 사고를 취한다. 속을 들끓게 하던 무언가가 서서히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런 이쪽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바락바락 대들며 붙잡고 늘어지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서야 비로소 그녀에게 할 말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다녀왔다 ." 그 말을 들으며 비로소 환하게 웃는 을 보며 나는 마주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