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저음의 목소리가 기이하게도 익숙했다. 그것에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내 앞으로 가로막으며 뒷모습을 내비치는 그 모습은 분명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바람에 흘러내리듯 너울거리는 보랏빛 옷지락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 옷깃 사이사이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비린내는 바다의 것인지 다른 어떤이들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먹빛에 가까운 보랏빛 머리카락. 그 아래로 섬뜩하게 휘어지는 눈. 그것까지 확인한 순간 절로 가슴이 두근두근, 불안하게 뛰었다.





"......신,스케?"

"아는 척 할 경향이 있으면 뒤로 물러나기나 해."





특유 서늘한 말투에 한겹 더 덧씌워진 냉기. 그것을 반영하듯 날카롭고 묵직하게 내려앉는 그만의 존재감. 긴토키의 말대로 그는 무언가 '변한 듯' 했다.





"넌 뭐야, 저 아가씨 남자라도 되냐?
같이 팔아치우면 그림 정말 좋겠는데~!"

"─아까도 말하지 않았던가?
위험하다고."




어깨를 으쓱이며 그가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섞여 나오는 기이한 울림은 텅 비어 있었다. 예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그 모습에 적응할 시간을 갖지 못해 갈팡질팡 할 때쯤, 갑자기 그의 앞쪽에 있던 남자들의 몸에서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으, 으아아악!"

"너, 너.......!"





그들의 몸에 그어졌던 붉은 선들이 쩌억, 입을 벌렸다. 벌어지고 벌려지는 사이로 역한 비린내와 붉은 액체가 흐르고 흘러 그들의 발치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지만, 인적도 없는 골목길에서 난 단말마들은 파도소리에, 그리고 밤 뱃소리에 묻혀 사그라들었다. 36.5도의 체온은 아래로, 아래로 치닫는다. 피와 함께 빠져나오는 그들의 생기는 허무하게 흘러 근처의 하수구로 슬금슬금 들어갔다.

이제는 시체라고 부를 수 있는 그것들을 망설임 없이 짓밟으며, 그는 붉게 범벅된 골목길에서 홀로 움직이고 있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에 튄 핏방울들을 실로 우아하게 한번 휘둘러 털어낸 그는 그것을 익숙하게 검집에 집어넣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이다. ."





그에게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고 멈칫하자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혹은 이어질 내 대답을 듣기 싫다는 듯 음울하게 웃으며 몸을 돌려버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내 쪽과는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마지막까지 온통 비틀려진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주먹을 꾸욱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멀어져가려는 신스케에게 달려가 그의 소매지락을 붙잡고 긴토키와 만났을 때 처럼 냅다 달려들었다.





"......큿. 무슨!"




얼결에 나를 받아주다 넘어질 뻔한 그의 눈이 한층 매섭게 빛났지만, 그런 오른쪽 눈보다 그의 왼쪽 눈을 가린 붕대가 더 신경쓰였다. 또 어디서 이렇게 다친거야. 떨리는 목소리가 가까스로 튀어나왔다.





"너도 긴토키랑 똑같아. 오랜만에 만나서 하는 소리가 뭐? '아는 척 할 경향이 있으면 뒤로 물러나기나 해'? 나한테 그거 말고 다른 할 말도 없는 거야?"





바락바락 화를 내는 이쪽을 어째 멀뚱한 자세로 듣고만 있던 신스케가 곧 눈에서 천천히 힘을 풀었다. 그 대신이라 해야 할까? 그는 언젠가 한번 보여주었던 표정을 지으며 낮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을 조용히 읆조려 주었다.






"...다녀왔다, ."








대화 상대:다카스기 신스케
그에게 닿기까지 앞으로 29 %
GOOD:닿았다!

Writer : 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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