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마지막 모습은 처참했다.
살려달라 울며 빌며 용서를 구하는 그에게 대답 대신 한쪽 눈을 생으로 뽑아주었다.
비명을 지르는 그의 귀를 도려내고 이빨을 하나하나 뽑아갈 무렵은 정말이지 시끄러웠다.
힌겹한겹 회를 뜨듯이 살점 하나 하나를 도려내자 반항은 더욱 심해졌다.
못내 발버둥치며 고통을 호소하는 그의 몸을 발로 걷어찼다.

이번에는 힘줄이나 하나 뽑아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작은 나이프로 바꿔들고 그의 손목을 헤집었다.
어디쯤에 있더라.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귀찮다.
그냥 끊어버릴까.

반쯤 헤집어져 너덜거리는 그 손목을 보다 검을 잡았다.
단칼에 잘라내는 건 힘들지만 이 정도로 썰려진 손목을 써는 것 쯤이야 쉬웠다.




신스케.





그녀의 울림이 다시 이어져 왔다.
아스라히 흩어지는 한숨과도 같은 그 음성은 순식간에 제 몸을 타고 올라와 행동을 멈추게 하는데 충분했다.

분명 그녀라면 이런 자신을 말리며 안아주었겠지.
바로 귓가에서 넘실거리듯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이 이토록이나 아련하게 불릴 수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그렇지만.





"그곳에서도 보이나?
...잘보고 있어. 네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다."





이제 너무 늦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사라진 그녀의 음성은 억지로 떨치며 멈추었던 손을 들어 남자의 손목을 통째로 내잘랐다.
고통에 몸부림 치며 자신의 피로 얼룩진 바닥을 굴러다니는 남자의 모습은 보기보다 추했다.
이대로 숨을 끊어주기에 자신은 배려도, 그것을 베풀 아량도 없었다.

거기에 지금쯤 방 밖에서 제 차례를 기다리며 태연히 웃고 있을 분홍 머리카락의 소년을 떠올리자 어쨌거나 숨은 붙여 소년의 화풀이 정도로 내던져 주어야 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비록 자신이 마지막에 숨통을 끊는 것이 아니라 아쉬웠지만, 충분히 그만큼 굴려주었으니 차례를 바꿔 줘야 했다.

비단 눈 앞의 남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생각보다 의 죽음에 관련된 자들은 많았다.
그리고 그런자들의 식솔들 또한.

단단히 보여주리라.
단 하나 밖에 없던 소중한 것 마저 눈앞에서 사라지는 그 기분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리라.

어린아이를 그 어미 앞에서 목을 쳐내고, 그것을 안겨주리라.
지아비 앞에서 아내의 사지를 절단내리라. 몸뚱이만 남은 그것을 적당히 던져주리라.
늙은 노부의 앞에서 그런 아들과 며느리의 시체를 던져주리라.
그 시체마저 처참히 굴리고 찢어 들개들의 먹이로 던져버리리라.
발밑부터 야금야금 갉아내어 물고기의 밥으로 던져주리라.

그렇게 한들 속이 풀리지 않는것 쯤 잘 알고 있다.
화풀이 조차도 안될 정도로 그 의미가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려두기 싫었다.
을 죽인 이들과 같은 땅을 밟고 그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것 조차 불쾌했다.
증오스러우면서 혐오스럽다.





"너무 늦어♪"

"......."





더럽게 묻은 피를 한번 털어내고 다시 검집에 꽃았다.
방 밖으로 나가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 폴짝 다가서는 카무이의 모습에 그대로 스치듯 지나갔다.
자신만큼이나 들끓어 오르고 있는 듯한 그 묵직한 살기의 소년을 상대해 봐야 피냄새에 머리만 아파올 뿐이다.


...잠시 쉬고 싶었다.





"......."





이제는 없는 그 이름의 주인을 떠올리며 가파오는 숨을 간신히 바로 잡았다.
금방이라도 불렀냐며 고개를 빼곰 내밀어 줄 이의 모습은 이제 없었다.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에 이를 악물었다.
이제 어떻게 호흡하며 어떻게 움직여 이 세계를 살아가야 할까.
전부라면 전부라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존재마저 없어진 지금은 숨조차 쉬기 버거웠다.
이대로 호흡을 멈추고 눈을 감아버리면 그 잔상이라도 망막에 닿을 수 있을까.
아니면 어떤 것도 보이지 않을 새까만 어둠뿐일까.





신스케...





다시금 들려오는 느릿한 그 목소리조차 희미해져 갔다.
그대로 툭, 툭. 바닥으로 떨어지는 액체에 갑판의 나무는 짙은 색으로 변해갔다.
볼을 타고 천천히 흐르는 그 물을 채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하염없이 흘려보냈다.

없다.
그 어디도 없다.
너의 모습이.
너의 온기가.
너의 목소리가.
너를 이루고 있는 그 모든 것이 없어져 있었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쯤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왜 이 세상은 똑같이 돌아가고 있을까.
어째서 달라지지 않는걸까.



자신의 세계는 이미 그녀가 호흡을 멈춘 그 순간부터 부숴져 버렸는데.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지금 당장.

네가 보고 싶어.



대화 상대:다카스기 신스케
그에게 닿기까지 앞으로 29 %
GOOD:닿았다!

Writer : 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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